2010년 8월 28일 새벽, 무거운 몸을 이끌고 버스에 올라탔다. 먼저 탄 대원들과 간단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부족한 잠을 벌충하기 위해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보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새벽4시 버스는 회사를 출발 희뿌연 새벽안개를 헤치고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영주IC를 거쳐 오늘 산행들머리인 죽령고개에 도착했다.   

죽령(698m)은 영주와 단양을 잇는 고개로 옛날 어느 도승이 짚고 가던 대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 하여 죽령이라 했다고 한다.

죽령에 도착하자마자 물과 점심 도시락 외에 비박산행에 필요한 먹을거리를 가지고 배낭을 꾸리고 나니 배낭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험한 산길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앞이 캄캄해진다.

국민체조로 간단히 몸을 풀고 종주팀장이신 박재석 사장님의 인사말씀에 이어 곧바로 박광호 산행대장님의 입산명령에 따라 산행길로 접어든다.

산행들머리는 완만한가 싶더니 얼마안가 급경사길이다. 앞서가는 대원들의 발걸음이 더디다. 숨은 차고 간만에 무거운 배낭을 짊어 진 탓인지 이미 온 몸은 땀에 흠뻑 젖었다. 그나마 다행 인 것은 일본 오키나와 부근에서 북상하고 있는 열대저기압의 영향으로 발생한 소형태풍 때문인지 바람이 시원하다. 시원한 바람을 위안삼아 더디지만 가파른 산길을 따라 한발 두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덧 내리막길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인다. 정말로 꿀맛이다. 가수 남진과 장은정이 부른 당신이 좋아라는 노랫말에 “아! 꿀맛 같은 그대 사랑에 내 인생을 걸었잖아”라는 구절이 있지만, 난 정말 아! 꿀맛 같은 막걸리 한 잔에 내 인생을 걸고 싶은 생각이다.

시원한 막걸리 한 잔으로 산행의 피로를 달래고, 다시 산행을 이어가다보니 막걸리 탓인지 무거운 배낭 탓인지 혈기왕성한 20대 초반 친구들과 함께 몸통이 큰 가세트 녹음기를 들고 지리산으로 놀러갔던 생각을 하니 감회가 새롭다. 지금은 누가 돈을 주고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다.

하기사 아들 둘이 훌쩍 커서 군대까지 갔다 왔고 내 나이도 어느덧 오십줄에 접어들었으니 마냥 청춘만은 아닌 것이다. 크게 한 번 “내 청춘을 돌리도”라고 외치고 싶은 욕망을 억지로 참고 가파른 내림막길을 조심스레 내려서니 또다시 오르막 길이다.

평소 산행과 새벽운동, 웨이트 트래닝으로 단련된 몸이지만 잠을 설친데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후텁지근한 날씨와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배낭의 중량감 때문인지 최상의 컨디션은 아닌 것 같다. 

몸이 평소 보다 무거워도, 오늘 산행의 최고봉인 도솔봉을 향한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는 터, 뿌연 안개로 시계가 좋지 않다보니 어디쯤 왔는지 도솔봉이 얼만큼 남았는지 가늠이 되지않는 탓에 몸은 마냥 관성의 법칙처럼 뿌연 안개가 자욱한 미끄럽고 험한 산길을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다 된비알을 힘겹게 차고 오르니 어느덧 오늘의 최고봉 도솔봉이다.

도솔봉(1.314m)은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영주시 풍기읍을 경계로 백두대간 주능선에 위치한다. 죽령을 중심으로 소백산국립공원에서도 남서쪽에 자리잡은 호젓한 봉우리로 소백산 일대의 육중하고 부드러운 육산을 이루고 있는 다른 봉우리들과는 달리 정상부에 암산을 이루고 있으며 북동방향으로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과 마주하고 남쪽으로 묘적봉과 솔봉 저수재로 능선이 이어지며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이루고 있다.

도솔봉을 힘겹게 올라와서 그런지 배꼽시계가 밥 달라고 난리다 하지만 점심은 묘적령에서 먹기로 했으니 간식으로 간단히 허기를 달래는 한편 개인사진과 단체사진도 찍고 나서 잔뜩 흐린 날씨 탓에 장쾌하게 펼쳐진 소백산의 마루금을 눈에 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길고 가파른 나무계단을 따라 서둘러 하산한다. 묘적봉을 거쳐 묘적령 까지는 대략 1.7km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린데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좀처럼 진도가 나질 않는다.

그래도 “산행은 인내의 예술”이라는 말을 위안삼아 무거운 발걸음을 쉼 없이 옮긴 끝에 드디어 묘적령에 도착,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데, 동작 빠르고 날 샌 대원들이 어느새 사공리 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부족한 식수를 보충하러 간다.

몇몇 대원들이 식수를 보충하러 간 사이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데 조금 전만 해도 시원하게만 느껴지던 바람이 어느 샌가 한기를 느낄 정도로 차갑게 느껴진다. 서둘러 체온을 유지하기위해 겉옷을 챙겨 입고 식수를 보충하러 간 대원들을 오기를 기다리는데 종주팀장님께서 궃은 날씨와 대원들의 몸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계획대로 비박을 할 것인지 아니면 적당한 탈출로를 찾아 안전하게 산행을 마무리 할 것인지 고민이 깊으신 것 같다.

어찌 보면 대원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종주팀장으로서 당연한 고민인 것 같다. 논의를 거듭한 끝에 일단은 싸래재 까지 산행을 이어가기로 결정하고 다시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한 끝에 흙목정상을 지나 싸리재에 도착했지만. 대원들의 안전을 고려 비박은 사리재가 아니라 단양온천에서 한다는 박광호 산행대장님의 결정에 일사분란하게 단양온천으로 하산하는데, 길은 돌밭인지라 울퉁불퉁하고 고르지 못하는데 비까지 내리니 하산길이 무척 힘들게 느껴진다. 하루 종일 산행으로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한 시간 남짓 걸어서 내려오니 단양온천 폐건물이 서있다.

단양온천에 도착, 무거운 배낭을 서둘러 내려놓고, 비박준비를 하는데 오늘 예정된 비박은 궃은 날씨와 대원들의 몸 상태 등 모든 종합적인 상황을 고려, 취소한다는 결정이 내렸졌다. 비박을 못한다는 아쉬움은 잠시, 한편으로는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 혈기왕성한 청춘도 아닌데 오기로 궃은 날씨에 비박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내일 힘든 산행을 이어가는 것도 무리일 터, 비박취소 결정에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다.

이왕에 비박은 취소됐고, 비박을 위해 준비해 가지고 온 삼겹에 소주 한 잔으로 대원들과 함께 즐겁게 뒤풀이를 하고, 몸은 천근만근 물 먹은 솜처럼 무겁지만 마음은 깃털처럼 가볍게 창원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S&T중공업 백두대간 17구간(죽령-도솔봉-싸리재)산행이 그 어느 구간 보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아무런 사고 없이 안전하게 구간종주를 마침에 있어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내 삶에 또 다른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도솔봉 산행을 오래토록 곱씹으며 하루하루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