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22구간 댓재∼환선봉∼피재∼매봉산∼금대봉∼함백산∼만항재(43.8㎞)

스무 번 넘게 백두대간 산행에 나섰지만 이번 21∼22구간은 출발 전부터 여느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대한민국의 자랑인 피겨 스케이팅 김연아 선수가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진정한 '피겨 퀸'에 올랐다는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다시 보아도 그 순간은 감동 그 자체였다. 진정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김연아 선수의 오늘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좌절과 고통을 이겨낸 결과의 산물이다. 이렇듯 무엇인가를 이뤄내는 것에는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마련인 것이다. 백두대간 종주도 고통을 이겨내는 인내가 있어야 한다. 종주라는 기쁨을 맛보려고 한발씩 나아갈 뿐이다.

S&T그룹 백두대간 종주팀(팀장 박재석 S&T중공업 대표이사·이하 종주팀)은 지난 2월 27일 새벽을 달려 제21구간(댓재∼피재) 출발지인 댓재 고갯마루에 도착했다. 오전 6시 코끝을 스치는 새벽 찬바람을 가르며 38명의 종주 대원은 구간 첫 봉우리인 황장산(1059m)으로 향했다. 눈길 산행을 대비해 스패츠와 아이젠으로 단단히 무장을 했지만 어둠과 함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안개가 종주팀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완만한 경사길이 계속되다 황장산 정상 부근은 가파른 급경사길이다. 맑은 날씨라면 황장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두타산과 청옥산을 조망할 수 있지만 이날은 불과 몇 미터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종주팀은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주 능선길을 따라 쉬지 않고 나아갔지만 좀처럼 거리가 줄어들지 않았다. 눈길 산행이 힘들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산행시간과 비교해 나아간 거리는 평소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산행 시작 2시간 정도 걸려 큰재(910m)에 당도했다. 고랭지 채소를 실어 나르고자 만들어 놓은 임도로 규모가 비교적 컸다. 잠시 휴식을 취한 종주팀은 박광호 산행대장을 선두로 임도를 따라 올랐으나 짙은 안개 때문에 길을 찾지 못했다. 이미 대간 종주를 마친 박 대장도 지형·지물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기상여건 때문에 30분가량 길을 찾다가 겨우 대간 길을 확보했다. 끝없이 펼쳐진 고랭지 채소단지가 산길을 바꿔 놓은 것이었다. 이 구간은 안개가 심한 날에는 길 찾기가 어려운 곳인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이번 구간은 이름 없는 봉우리가 많은 곳이다. 정확히 셀 수는 없지만 40∼50개가 된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크고 작은 봉우리를 많이 넘어야 한다. 구간 최고봉인 지각산 환선봉(1079m)과 덕항산(1071m)에 이르면 산행거리도 10㎞를 넘어선다. 앞서 언급했듯이 구간 전체가 눈에 덮여 산행속도는 더디다. 겨울산행 장비를 갖추었지만 이미 등산화는 눈에 젖어 버렸다. 아름드리 적송이 군락을 이룬 푯대봉(1009m) 갈림길에 이르자 체력이 거의 바닥이다. 푯대봉은 대간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어 실제로는 거치지 않고 바로 건의령(한의령)으로 향했다. 여기서 종주팀은 피재까지 6.4㎞를 더 나아가야 할지를 논의했다. 결론은 시간당 2㎞ 남짓 산행속도로는 피재(삼수령)까지 간다는 것은 무리라고 결론짓고 첫날 산행을 종료하기로 했다. 이로써 첫날 산행은 10시간에 걸쳐 19.7㎞를 걷는 데 만족해야 했다.

아쉬움 속에 종주팀은 숙소로 정한 태백 시내 찜질방으로 향했다. 시끌벅적한 찜질방에서 눈에 젖은 등산화를 말리고 피로를 푼 종주팀은 다음 날(28일) 오전 7시 만항재에서 피재까지 24.1㎞ 산행에 올랐다. 원래 계획은 피재에서 남진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으나 날씨와 접근성 문제로 만항재에서 북진하는 산행을 택했다. 만항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도로가 지나는 고갯길로 해발 고도가 무려 1330m로 구간 최고봉인 함백산(1573m)과 고도 차가 240m에 불과하다. 만항재에서 함백산으로 가는 길은 비교적 완만한 오르막으로 크게 힘든 구간이 아니다. 그러나 정상 부근의 각종 통신시설이 보이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다소 오르막이 이어진다. 전날과 달리 눈도 그렇게 많이 쌓여 있지 않고 날씨도 쾌청한 관계로 산행 속도가 빨랐다.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함백산 정상을 지나 내리막길이 이어지는 구간은 대간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가슴 속까지 후련했다. 질긴 생명력을 상징하는 주목 군락을 감상하는 것도 산행의 또 다른 재미였다.

은대봉을 거쳐 금대봉으로 이어지는 구간도 임도가 나 있어 비교적 수월하게 지나는 구간이지만 은대봉에서 싸리재(두문동재)로 내려가는 코스는 급경사 길이어서 특히 조심해야 한다. 금대봉에 오르면 지나온 대간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금대봉을 지나면 비단봉과 매봉산을 거쳐 피재로 비교적 수월한 편이지만 비단봉(1279m)이 쉽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정상이 눈에 보일 듯 가깝게 보이지만 두 번 정도 숨을 내몰아 쉬어야 정상에 이른다. 매봉산 정상과 풍력발전기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 남은 구간은 전날 지나지 못했던 건의령에서 피재 구간 6.4㎞, 비단봉에서 피재까지 5㎞ 등 모두 11.4㎞다. 매봉산 풍력 발전단지 아래에서 점심을 해결한 종주팀은 고랭지 채소밭을 따라 매봉산을 거쳐 피재까지 한달음에 내달렸다. 산행 7시간 30분 만에 피재에 도착한 종주팀은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일부 대원을 피재에 두고 건의령까지 산행을 이어갔다. 표고 차 10∼20m 내외의 구간답게 6.4㎞를 1시간 35분 만에 주파하는 괴력을 보였다.

지난 2008년 5월 10∼11일 미시령∼한계령(27.5㎞), 2009년 10월 10∼11일 댓재∼백봉령(37.1㎞)에 이어 세 번째 '숙박 산행'이었던 이번 구간은 43.8㎞를 19시간에 마쳤다.

[나의 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에서 꽃피운 우정

권도행(S&T 중공업)

강원도 하면 떠오르는 사북, 탄광, 강원랜드…. 멀게만 느껴졌던 강원도 태백권의 백두대간 산행을 마치며 감동적인 그때의 순간을 떠올려본다.

태백시 일원은 탄광촌의 옛 기운이 서려 있는 것 같아 산행 초입부터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올해 첫 산행부터 1박 2일. 강행군이다. 각오는 했지만, 짙은 안개에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 속을 헤치며 한 발씩 정상을 향한다. 오르는 봉우리 곳곳마다 나뭇가지에 핀 눈꽃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치 칼날처럼 곱게 핀 눈꽃은 태어나 처음 보는 자연의 조화다. 새삼 자연의 아름다움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나뿐만 아니라 종주팀 모두가 탄성을 연발한다.

이번 구간은 총 44㎞의 대장정. 그 중 6㎞ 남기고 무릎 인대에 고장이 났다. 통증이 심하게 느껴진다. 포기해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하지만, 기계사업본부에서 유일하게 참가한 내가 그럴 수는 없었다. 4㎞ 남기고 후회가 물밀듯 밀려온다. 도저히 걸을 수가 없을 정도다. 아픈 내색도 하기 싫었지만 선뜻 스틱을 건네 준 삼유 씨. 평소 어색했던 그와 친구 하기로 했다. 옆에서 끝까지 동행해 준 덕신 씨, 아픈 다리 만져주고 치료해 준 김현우 대원. 가장 험난한 산행에서 그들과 깊은 우정의 꽃을 피웠다.

지면을 빌려 정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처음 1박 2일의 백두대간 대장정. 44㎞ 산행은 나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고 감동이다. S&T중공업 백두대간 대장정이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