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차 산행] 지기재 ~ 백학산 ~ 큰재 (17.7km)

새벽 4시 창원에서 출발한 버스는 아침 7시 경북 상주 지기재에 도착했다. S&T그룹 백두대간 종주팀(팀장 박재석 S&T중공업 대표이사)의 24차 산행 출발점이다. 901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갯길에는 이곳이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백두대간 어느 구간이듯 그렇지 않은 곳이 있겠느냐마는, 처음부터 기대감으로 떨려왔다. 더욱이 5월이었다.

버스 안에서 동이 터 오는 걸 보면서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데, 과연 백두대간 줄기에 들어서자마자 온통 초록 물결이다. 5월 15일, 푸름이 절정에 달한 때이기도 했다.

구간 출발점에서 종주팀이 나누어준 산행 안내서를 펼쳐보자 눈길을 사로잡는 문구가 있다.

해발 200∼300m 완만한 산길

"백두산에서 출발해 남쪽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온 백두대간이 마지막으로 남은 힘을 모아 지리산으로 솟구치려고 잠시 숨 고르기를 하는 듯하다."

해발 200∼300m를 유지하는 완만한 산길이었고 이 구간 최고봉인 백학산은 해발 615m였다. 산행 참가자 120여 명은 "S&T중공업 백두대간 파이팅"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힘차게 백두대간으로 들어갔다.

지기재 초입에는 포도, 배, 사과 과수원이 있었고, 탐스러운 열매를 예고하는 꽃잎이 앙증맞은 모습으로 산행팀을 맞이했다. 낙엽송 숲으로 들어가 10여 분 오르막을 오르자 능선이 나타났다.

산행 초입 10여 분은 몸이 산에 적응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숨이 가빠왔다.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했더니 숲의 청량감이 몸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듯했다. 백두대간의 초록은 눈을 부시게 했고, 숨을 쉴 때마다 싱그러운 초록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햇볕에 반사된 초록빛 때문인지 S&T 가족 역시 초록으로 물들었다. 이때부터 120여 명의 '초록 대원'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기 시작했다.

흔히 백두대간 하면 1000m를 웃도는 고봉이 근육질을 자랑하는 험한 산길이라고 여기곤 하는데, 이번 구간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대간 상에는 논과 밭이 즐비했고, 무덤도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능선상에는 횡으로 대간을 가로지르는 무수한 고갯길이 나 있어, 예부터 이웃 마을 마실 가듯 백두대간을 수시로 넘나든 사람이 많았음을 짐작게 했다.

초록 물들어 마음도 싱그럽게

이번 구간의 최고봉인 백학산 정상을 찍고 '개터재'와 '회룡재'를 향해 계속 전진하자, 숲이 점점 울창해지면서 제법 첩첩산중 같은 느낌이다. 논과 밭을 일구며 백두대간과 한 몸이 되어 생의 터전을 일궈온 마을이 눈에 띄긴 했지만 워낙 산골 마을이어서 그런지, 시끌벅적한 세속의 소음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4시간여를 걸어 윗왕실재라는 곳에 도착하자 넓은 임도가 나타났고, 임도상에는 동물 이동통로가 나 있었다. 점심때를 1시간여 앞두고 마신 한 잔의 얼음 막걸리는 윗왕실재라는 공간을 두고두고 기억하게 했다.

고도가 높지 않은 구간이어서 부담없는 소풍 길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당찮은 오만함이었음을 느껴야 했다. 비록 높지 않은 고갯길이었지만 수없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해야 했다. 점심 후에는 지친 기색을 드러내는 '초록 대원'이 점점 늘어나기도 했다.

숲이 무성해 시원한 조망을 감상할 수 없는 게 아쉬웠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고갯길이 지루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간 중간 산속에 펼쳐진 둥글레·은방을 군락지가 그나마 피로감을 덜어주었고, S&T 가족의 격려가 힘을 보탰다.

17.7㎞를 7시간 동안 걸어 큰재에 도착하자 폐교 터가 자리 잡고 있었고, 기존 건물을 허물고 수련장을 짓는 듯한 공사가 한창이다. 백두대간 위에서 공부했을 학생들의 인생 종주 길이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두대간은 도를 가르는 경계가 되고 적어도 군을 구분하는 울타리가 되는 게 보통인데, 이번 구간은 면 단위의 경계 역할을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이웃마을을 이어주는 동네길이 되곤 했다. 지기재, 개머리재, 개터재, 회룡재 등 고갯길이 수없이 발달해 있는 독특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백두대간이 품은 웅장함을 느낄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상주 들녘을 가로질러 시원하게 뻗어가는 백두대간 줄기는 장쾌했다.

큰재에 도착한 S&T그룹 백두대간 종주팀은 지리산을 향해 서서히 고도를 높이는 백두대간 줄기를 묵묵히 응시하며 다음 산행을 기약했다.

[나의 백두대간 도전기]

배려... 산사람의 모범을 보다

정을종 S&T그룹 종주팀 부대장

2008년 4월 19일 오전 6시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해맞이 공원에서 열린 'S&T그룹 도전! 백두대간 대장정' 출정식을 떨리는 가슴으로 맞았다. 첫 산행에 대한 설렘과 '산행 부대장'이라는 과분한 직임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남들보다 산을 많이 다녔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산행지식도 없는데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사실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러나 'We can do it!' S&T그룹 백두대간 종주팀의 구호처럼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 많은 것을 배웠다. 서로 배려하고 챙겨주고 아껴주는 팀원을 보면서 진정한 산사람의 모범을 발견하고는 감탄도 했다.

총 40구간 중 벌써 24구간을 아무런 사고 없이 다녀왔다. 이는 종주 팀원 모두가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한 덕분이 아닌가 한다.

2011년 9월 마지막 구간인 지리산 천왕봉에서는 '할 수 있다'가 아닌 '해냈다'는 구호가 메아리치리라. 그날까지 안전한 산행이 되도록 산행 부대장으로서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