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령 ∼ 도솔봉 ∼ 솔봉 ∼ 싸리재

여름 산행에는 변수가 많다. 불볕더위도 그렇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기습 폭우나 태풍 등 기상 여건에 따라 계획을 변경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S&T그룹 백두대간 종주팀(팀장 박재석 S&T중공업 대표이사·이하 종주팀)의 26구간(죽령∼싸리재) 산행은 출발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산악지대인 죽령에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는 기상예보를 접했지만 종주팀은 '할 수 있다'는 도전정신으로 종주 산행 최초로 1박 2일 비박 산행을 감행했다.

세찬 바람, 시야 확보 어려워

28일 오전 4시 창원에서 출발한 종주팀은 2시간 45분을 달려 산행 시작점인 죽령에 도착했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을 경계로 해발 689m의 고갯마루인 죽령은 조선 시대 추풍령, 문경새재와 더불어 영남의 3대 관문으로 객점과 마방이 있었고, 사람의 왕래가 빈번했던 교통의 요충지였다. 죽령의 상황은 안 좋았다. 세찬 바람과 함께 금방이라도 한차례 비라도 퍼부을 기세였고 안개로 20~30m 앞 시야 확보도 힘든 상황이었다. 6개 조로 편성된 30명의 종주 대원은 비박에 대비한 식량과 침구류 등을 챙기고 안전 산행을 위해 간단한 맨손 체조로 몸을 풀었다.

어린아이 키만 한 큰 배낭을 메고 첫 목적지인 도솔봉(1314.2m)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산행 들머리는 죽령 휴게소에서 풍기 방면 200m를 넘어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시작된다. 도솔봉까지는 6㎞로 3시간 정도 걸릴 듯싶다. 하지만, 10여 분이 지나 만난 가파른 급경사면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마치 비를 맞은 듯 타고 내린다. 세찬 바람 때문에 몸을 움츠리고 그냥 걷는다. 앞사람만 쳐다보고 오를 수밖에 없다. 짙은 안개 때문에 주위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다. 도솔봉 4.7㎞라고 적힌 이정표를 지나 헬기장과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되다 삼형제봉 첫봉(1230m)과 제2봉(1286m)에 올랐다. 시계가 9시 5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작은 암릉으로 된 제2봉은 사방으로 시야가 트여 조망하기 좋은 위치이지만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급경사 길에 체력 급격히 소진…11시간 17.85km 힘겨운 산행

3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 고무가 박힌 나무계단으로 되어 있고 안부에 이르면 이후 급경사 길을 지난다. 그리고 20여 분 더 오르자 구간 최고봉인 도솔봉이 안갯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출발 3시간 38분 만인 11시에 오른 도솔봉 정상은 작은 공터로 사방이 막힘이 없지만 짙은 안개로 조망을 할 수 없어 아쉬웠다. 박광호 등반대장이 두 손을 높이 들고 "S&T 중공업 백두대간 만세"를 외쳤다. 후미를 기다리는 사이 세찬 바람은 체온을 끌어내려 한기를 느끼게 했다. 단체사진으로 흔적을 남기고 11시 30분께 다음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간 길은 급경사 나무 계단 길로 이어지다가 묘적봉(1148m)을 거쳐 0.7㎞ 더 가면 묘적령이 나온다. 하지만, 실제 거리는 이보다 더 먼듯하다. 묘적령에서 점심을 먹은 종주팀은 비박에 대비해 식수를 보충하고자 사동리 쪽으로 하산했다. 내려가는 것은 별 무리가 없었으나 다시 오르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산봉우리 하나를 넘을 정도의 체력 소모가 뒤따른다. 종주팀은 비상회의를 개최했다. 서해로 올라오는 태풍급 열대 저압부의 세력이 만만찮아 밤늦게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종주팀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난상 토론 끝에 비상탈출이 가능한 싸리재까지 진행한 후 비박 여부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점심과 비상회의를 하느라 평소보다 긴 시간을 보낸 종주팀은 다시 길을 나섰다. 솔봉(1102.8m)을 지나 뱀재를 거쳐 흙목 정상까지 2시간 40분가량 걸렸다. 급경사 오르막길과 내리막을 오르내리다 보니 체력이 급격하게 소진됐다. 흙목 정상에서 곧장 나아가 왼쪽 내리막길을 따라 1㎞ 남짓 내려가다 보면 헬기장을 거쳐 싸리재가 나온다. 산행 시작 10시간 만에 15.15㎞를 걸어왔다.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시간당 1.5㎞ 정도 나아간 산행속도가 말해주듯 이번 산행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종주팀은 회의를 열어 비박할 것인지 아니면 단양온천으로 내려갈 것인지 논의한 끝에 하산을 결정했다. 싸리재에서 단양온천까지는 2.7㎞로 바위 너덜지대에다 마침 내리기 시작한 비 때문에 길이 매우 미끄러워 힘들었다. 한참을 내려선 후 임도를 따라 최종 목적지인 단양온천에 도착했다. 이번 산행은 대간 길 15.15㎞에 하산길 2.7㎞를 더해 17.85㎞를 11시간 넘게 걸려 마무리했다.

[나의 백두대간 종주기]

"산행은 인내의 예술이더라"

                                                                              S&T중공업 김영도 대원

희뿌연 새벽 안개를 헤치고 달린 버스가 어느덧 산행 들머리인 죽령에 도착했다. 들머리 급경사부터 숨이 차고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그나마 북상하는 소형 태풍과 맞서다 보니 시원한 바람이 있어 다행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인다. 막걸리 탓인지 친구와 몸통 큰 카세트를 메고 지리산으로 놀러 갔던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의 추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돈을 줘도 못할 것 같다. 오늘 최고봉인 도솔봉을 지나자 배고픔에 좀처럼 진도가 나지 않는다. '산행은 인내의 예술'이라는 말을 위안 삼아 쉼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싸리재에서 탈출로를 찾아 하산길을 택했다. 청춘도 아닌데 오기로 비박을 강행하는 것도 무리일 터. 이번 산행은 어느 구간보다 힘들고 어려웠다. 또 다른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 같아 자랑스럽기도 하다.

[나의 백두대간 종주기]

"다시 도전, 그리고 성취감"

                                                                              S&T중공업 정명화 대원

6개조로 편성된 조별 산행에 5조 팀장을 맡았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배낭을 챙기는데 딸아이가 "우리 아빠 한 살림 차려나간다"며 극성이다. 20년 만에 짊어지는 무거운 배낭이다. 죽령고개를 출발해서 도솔봉까지 6㎞ 오르막길은 오늘의 최대 난코스다. 무거운 배낭 탓에 조금은 힘이 든다. 도솔봉에 오르자 바위틈에 핀 두 송이 들국화가 종주팀을 반기듯이 하얀 속살을 내민다. 이른 가을의 소식을 알리는 전령 같아 반갑다. 묘적령에 도착해서 땀 흘리며 먹는 점심은 정말 꿀맛이다. 묘적령을 뒤로하고 싸리재까지 안갯속 10시간 산행은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하다. 산행 중간에 다리에 쥐도 나고 체력이 바닥이 날 정도다. 그러나 또 한 번의 도전을 성취하고 나니 가슴 한 곳에서 뿌듯함이 밀려온다. 궂은 날씨 때문에 제대로 된 산풍경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